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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시간’ 찾는 이들을 위한 고독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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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선사 작성일16-12-17 09:59 조회4,2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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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음소거가 필요해요.” 육아휴직 중인 A(36)씨를 최근 잠식하는 욕망은 단 한 가지다. 잠시만, 지독히 홀로이고 싶다.

돌아보면 우리가 하루 중 오롯이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은 턱없이 짧다.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해 템플스테이를 신청한 한 참가자가 명상에 빠져 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정말, 음소거가 필요해요.” 육아휴직 중인 A(36)씨를 최근 잠식하는 욕망은 단 한 가지다. 잠시만, 지독히 홀로이고 싶다.




4개월, 36개월 아이들은 나무랄 데 없이 사랑스럽다. 다만 수유하랴, 먹이랴, 재우랴, 달래랴, 티 안 나는 집안일 하랴, 눈코 뜰 새 없는 24시간이 끝없이 반복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늘었다. 불현듯 불안도 밀려왔다. 나는 얼마나 더 24시간 내내 엄마라는, 아내라는 가면 안에서만 살 수 있을까. 이렇게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은 마모돼 가도 좋은 걸까.

“아이를 잠시 친정 엄마가 봐주던 날, 도망치듯 나와 하염없이 걸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 웃음 소리도 남편이 말 거는 소리도 모두 너무 버겁고 싫다는 생각이 들어 아차 싶었거든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주택가를 하염없이 걸었어요.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해도 함께 살 부대끼며 견딜 수 있는 시간에는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흔히 고독이 비참하다지만, 혹자에겐 홀로일 수 없는 시간들이 더 큰 고역이다. 파스칼이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불행은 대부분 모두가 자신의 방에 남아 있을 수 없는 데서 온다”고. 일찌감치 ‘고독의 힘’을 간파한 시대답게 자발적, 비자발적 혼밥족은 늘고 있지만, 누구든 원한다고 혼자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적의 피난처인 집에서 조차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에겐 특히 그렇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말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드 좋은 본성과 너무도 오랫동안 떨어져 시들어가고, 일에 지치고, 쾌락에 진력이 났을 때, 고독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게티이미지뱅크

종합리서치회사인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해 19~59세 남녀 2,000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이 있는지를 묻자 ‘어느 정도 있다’가 48.8%, ‘거의 없다’가 29.4%, ‘전혀 없다’가 4.1% 였다. ‘충분하다’는 답은 15%에 그쳤다. 나만을 위한 시간이 ‘거의 없다’거나 ‘전혀 없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30대(37.8%), 40대(31.6%), 20대(26.6%) 순이었다. 대상자의 55.6%는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사고 싶다’고 말했고, 51.7%는 ‘최근 들어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 회의가 들 때가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살되, 때론 혼자 있는 시간을 뜻 깊게 누릴 방법은 없을까. A씨는 꿈꾼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남편과 번갈아 아이들을 보며 서로에게 혼자 여행할 시간을 주려고 해요. 우선 자기 스스로의 몸과 마음 상태를 잘 돌봐야 아이들도 더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이들을 위한 고독과 은거의 기술을 소개한다.

홀로 또 더불어 ‘명상형’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절에 들어 갈 테다.” 유구하게 이런 상투어가 남발된 것은 절만큼 홀로이기 좋은 곳도 없기 때문일 것. 15일 찾은 서울 종로구 금선사 앞 마당에는 25명의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북한산 초입에 위치한 금선사는 구기동 주택가에서 불과 15분 거리다. 은둔처로 삼기엔 너무 도심지가 아닌가 싶다가도, 길목에 붙은 ‘야생 멧돼지 출몰 지역, 주의’라는 문구에야 비로소 산은 산이구나 싶다.

“절에선 마주치는 사람끼리 여러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합장이면 족합니다.” 시작부터 묵언을 강조하는 통에 일단 안도감이 든다. 참가자는 25명. 외국인 참가자들을 빼면 한국인 참가자는 13명 그 중 홀로 템플스테이를 찾은 이는 6명이다. 인생의 큰 전환점을 앞둔 예비 변호사, 내년 제대를 앞두고 나온 휴가 중 생각정리 차 절을 찾은 병장, 혼자 조용히 마음을 다잡고 싶은 취업준비생, 여행 삼아 휴식을 위해 온 시민활동가 등.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선우 스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법복을 입고 생활하는 이곳은 하나의 흐름 속에 자신을 내맡기고, 관조하며 쉬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어떤 원인이나 답을 밖에서 찾으려는 습관이 강한데, 여기서만큼은 어떤 의도나 노력을 억지로 하지 말고 마음을 내려 놓아 보세요. 아침 창에서 새벽 공기가 밀려 들어오듯, 마음이 열린 틈으로 의도치 않은 감상과 감동이 들어오는 기분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한번에 감 오진 않았지만 절 한 켠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도심 풍경이 아득해진 것 만으로도 우선 만족이다.

서울 종로구 비봉길 금선사에 마련된 템플스테이에서 한 참가자가 서울 도심을 내려다 보고 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취업을 준비 중인 이지영(26)씨는 “최근에 한 시험 결과를 확인하고 마음이 좋지 않아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일단 보는 풍경이 달라진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낫다”며 “주말 이틀 동안이라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다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상지도, 108염주 만들기 등 일정이 이어지는 동안 “억지로 움켜쥔 것, 내가 정하고 스스로 나를 묶은 틀이 무엇인지, 조금 더 자유로울 수는 없는지” 돌이켜보라는 선우 스님의 과제가 주어졌다.

“템플스테이라는 게 저희가 소품과 무대는 마련해드리지만, 여기서 감독도 작가도 주연도 결국은 여러분 자신이잖아요. 몰입해서 이 무대를 잘 이용해보세요. 인생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스스로를 오롯이 주연 대접을 하는 시간이 꽤 오랜만이다 싶다.

저녁 일정의 대미는 108배가 장식했다. 절을 할수록 땀은 맺히는데, 이마 팔 가슴이 바닥에 가까이 가 닿을 수록 마음 언저리가 서늘했다. 바닥의 찬기 때문인지, 스님 말씀대로 낮은 곳에 임해 마음의 창이 열렸기 때문이지는 알 수 없었다. 조용히 들려오는 108배의 문장들만 계속 서느렇게 폐부에 맴돌았다.

"살아 오면서 내가 누렸던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감사하며 절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삶과 만나고자 절합니다. 내 가슴과 직관에 귀 기울이며 절 합니다. 내 열정과 생명력을 소중히 여기며 절합니다. 내 눈으로 본 것만 옳다고 생각한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절합니다.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은 지금 이 순간임을 자각하며 절합니다."

음 소거, 피로 소거 ‘혼행형’

입사 12년차 회사원 B(37)씨는 3년째 “휴가는 무조건 혼자 제주도로” 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익숙해지고 나니 휴가뿐 아니라 평소 여행도 늘 혼자 하는 것을 원칙이 됐다. “출발 시기, 일정, 메뉴 등을 조율할 필요가 없어 홀가분하잖아요. 무엇보다 내가 가진 여행 취향이 상대방에게 환영 받지 못해도 상관이 없다는 게 커요.” 그는 홀로 스쿠터를 한 대 대여해 해안도로를 하염없이 달린다. 딱히 목적지도 없고 길을 잃기도 일쑤인 이런 여행은 동반자에겐 자칫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될 것이란 얘기다. 최근 스쿠터 일주를 마치고 온 그는 틈 나는 대로 혼자 여행을 누릴 생각이다. “3일 내내 비가 내렸는데, 회색빛 제주를 보는 게 나름 재밌었거든요. 만약 그런 걸 싫어하는 동행이 있었더라면 마음이 무거웠을 거에요. 계속 비 와서 어쩌지, 망했네, 서로 미안하네 하면서요.”

홀로 떠나는 제주 스쿠터 여행은 B씨가 많은 상념을 덜어내는 소중한 휴가다. 안전을 위해 갖춘 것은 "멀리서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행색"이라고.

며칠 안 되는 휴가를 굳이 대인관계의 스트레스 속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케팅사 C(32) 대리도 마찬가지다. 최근 홀로 후쿠오카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그는 “정말 마음이 맞고 뭘 해도 좋은 여행메이트가 있다면 굳이 함께 안 갈 이유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다면 혼자가 낫다”며 “이미 일상에서도 스트레스는 도처에 넘쳐나니 비용을 들이는 여행만이라도 혼자 누리는 시간으로 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단점은 사진을 찍기가 좀 불편하다는 것과 때로 겁이 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혼자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안전 문제. 영국 정부가 작성한 ‘혼자 여행시 조심해야 할 사항’들의 목록은 홀로 여행을 결심한 이들이 참고할 만 하다. ▦여행 관련 사이트에 개인 신상을 남기지 마라 ▦비싼 장신구를 하지 마라 ▦낯선 사람에게 숙소에 관한 얘길 하지 마라 ▦원치 않는 친절은 처음부터 외면, 무시하라 ▦히치하이킹은 하지 마라 ▦영어가 통하는 나라에서는 'help! (도와주세요)'보다는 'fire!(불이야)'라고 외치는 게 효과적이다. ▦현지 경찰이나 병원, 대사관 등의 연락처를 숙지한다 등이다.

안전 문제로 여행이 부담스럽다면, 10만원 대 패키지를 이용해 호텔, 리조트에서만 머무르며 쉬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호텔, 리조트는 최근 ‘1인 패키지’ 출시에 분주하다. ‘2인 조식’을 기본으로 했던 패키지를 ‘1인 조식’으로 구성하고 비용은 줄이는 식이다. 롯데시티호텔과 L7명동은 9월 한달 간 1인 이용자용 ‘마이 데이 패키지’를 선보였다. 객실 1박, 조식 1인, 와인 1병, 백화점 상품권 2만원이 포함된 패키지로 지점에 따라 무료 풋스파를 이용할 수 있는 이 상품은 95% 이상 판매완료됐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혼자 즐기는 휴식이 주목 받다 보니 실험개념으로 상품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뜨거워 또 다른 패키지를 기획 중”이라고 말했다. 한화호텔리조트도 최근 ‘나 혼자 간다’ 패키지를 내놨다. 객실 1인과 조식 뷔페 1인 혹은 객실 1인과 사우나 1인을 결합했다.

시간 확보가 관건 ‘틈새형’

하지만 문제는 비용과 시간. 돈도 돈이지만 내가 홀가분히 떠나면 ‘소는 누가 키우냐’가 늘 문제다. ‘네 주말 따윈 원래 반납용’인 줄 아는 회사, 나만 올려다 보고 있는 아이들, 밀린 과제 등 홀가분하지 못할 이유는 늘 산적해 있기 때문. ‘혼자만의 시간’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적 이유다. 이런 이들을 위해 독일 출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도리스 메리튼이 권하는 노하우는 언제 어디서든 ‘자신만의 감정적 달팽이집 짓기’를 연습하는 것이다. 예컨대 점심시간만큼은 반드시 혼자 햇빛을 쬐며 산책을 하는 등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확보하는 등의 작은 노력이 큰 휴식과 보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는 저서 ‘혼자가 편한 사람들’(비전코리아)에서 특히 자신이 “돈을 내서라도 팬 사인회나 밤샘 축제에 참가하려는” 외향인이 아니라면, 대신 “아무리 관심 가는 경기라도 사람이 많이 몰릴 것 같으면 집에서 TV로 지켜보는” 내향인이라면 반드시 이런 틈새 시간을 확보할 것을 권한다. 이는 미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인 매리 데이비스가 내담자의 ‘회복탄력성을 키울 때’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 시간만 야외에 머물러도 집중력이 높아지고 긍정적 마인드가 강해지며, 마음의 여유도 더 많이 생긴다. 똑같은 시간을 쉰다고 하더라도 커피숍 등에 앉아서 보내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많은 심리전문가들은 '혼자 있는 능력'이 충만한 내향인일 수록 점심시간 만이라도 자신만의 시간으로 확보해 고독의 평화를 누리라고 권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가능하다면 물을 볼 수 있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산책이 좋다는 조언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덤하우스) 저자인 사이토 다카시 일본 메이지대 교수의 추천법이다. “사람은 물과 밀접한 관계성을 갖는다. 인류는 바다에서 진화했고, 태아일 때는 엄마의 배 속, 물의 세계에 있다. (…)혼자 있으면 우울해져서 푹 가라앉는다면, 시원시원한 물의 흐름을 상상하거나 실제 강에 달려가 본다. 우울한 생각이나 고민이 물의 흐름과 함께 흘러가는 듯한 쾌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도 쉼 없이 흘러가는 물을 보면서, 흘려 보내야 할 감정들은 빨리 흘려 보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상처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강이 아니라 개울이면 또 어떠랴. 스크린 속 바다 풍경인들 어떤가. 10분이라도 고독의 평화를 얻을 수만 있다면. 내면 깊숙한 곳에 자신만의 샘을 비축할 수만 있다면.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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